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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

황확루에 대하여 글쓴이 조동준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18/07/17
  • 조회수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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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鶴樓(황학루) 유래

황학루는 심청가의 범피중류 흥보가의 제비노정기에 등장하는 루각이다

黃鶴樓(황학루)는 중국에 있는 樓亭(누정)의 名稱(명칭)인데 여기서는 七言律詩(칠언율시)의 顥名(호명)이다. 이 詩(시)는 唐(당)나라의 崔顥(최호)(704-705)가 지은 것으로 中國文學史(중국문학사)에서 七言律詩(칠언율시) 가운데 가장 잘 지은 시로 平價(평가)되고 있다.
黃鶴樓(황학루)는 武昌(무창)의 서남쪽 모퉁이에 있으며 당시 시인으로 杜甫(두보)와 함께 이름을 드날리고 詩仙(신선)이라 부르던 李白(이백)(701-762)이 이곳에 올라와 시를 지으려고 종일토록 끙끙거렸으나 崔顥(최호)의 시보다 더 잘 지을 수 없어서 한 句도 짓지 못하고 내려왔다. 그 뒤 金陵(김릉)南京(남경)의 鳳凰臺(봉황대)에 올라가 지은 그의 ?登金陵鳳凰臺(등김릉봉황대)? 시가 비로소 黃鶴樓(황학루) 詩(시)와 匹敵(필적)할 만 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 黃鶴樓(황학루)에 전해오고 있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먼저 그 전설을 소개하고 詩를 음미하기로 한다.

옛날 이곳에 辛氏(신씨)라는 사람이 술장사를 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이 술집에 들어왔는데 의복은 襤褸(남루)하나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준수하여 가위 仙風道骨(선풍도골)이었다. 그 노인은 자리에 앉아 주인 辛氏(신씨)를 불러서 말하기를 “나는 술값이 없는데 약주 한 병 주시겠소?” 하였다. 주인은 그 노인의 번쩍이는 눈빛과 잘생긴 풍채에 압도되어 한 말도 못하고 “예 드리겠습니다.”하고는 약주 한 병과 안주를 갔다 드렸다. 노인은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벌컥벌컥 마시고는 인사도 없이 나가버렸다. 다음날 그 노인이 어제와 같은 시각에 들어와 또 술을 청하였고 주인은 어제와 같이 술을 갔다 드렸다. 이와 같이 매일 나타나는 노인은 술을 마시고 돌아갔고 주인 또한 기탄없이 술을 대접하기를 한 달 이상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辛氏(신씨)를 보고 “내가 그 동안 외상으로 마신 술값이 상당히 되겠지?”하고 물었다. 辛氏(신씨)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 노인이 “그럼 내가 술값을 갚아야지 하지만 現金(현금)이 아니니 그리 알고 붓과 벼루를 가져 오게.”라고 하였다. 주인 辛氏(신씨)가 필묵과 종이를 챙겨 가져다주니 노인은 먹을 갈아 종이에 학 한 마리를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하는 말이 “아마도 이것이면 술값은 족할 것이야?”하고는 문 밖으로 나간 뒤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술을 마시러 온 손님이 어쩌다가 흥이나 노래를 부르면 벽에 붙여 놓은 그림 속의 학이 누런 학으로 변하여 날개를 치면서 노래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술집 안에 있는 모든 손님이 학이 추는 춤에 맞추어 함께 노래 부르고 이 소문이 곧 온 마을과 나라 안에 퍼져서 술잔이나 마시는 사람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것이 사실인가.’하고 모여들었다. 그러니 하루에 술 몇 동이 팔던 辛氏(신씨)의 집은 그날부터 하루에 수십 동이의 술을 팔게 되어 얼마가지 않아 큰 부자가 되었다. 


 그 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발을 뚝 끊었던 그 노인이 뜻밖에 다시 나타났다. 辛氏(신씨)는 하도 반가워서 맞아들이고 술을 대접하니 노인이 이르기를 “이제 웬만큼 돈을 벌었겠지?”라고 하였다. 신씨는 “예, 선생님 덕분에 저는 돈을 많이 벌어 이제는 부자가 되었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술을 다 마신 노인은 “그러면 이제는 저 鶴(학)을 돌려주어야지”하더니 가지고 있던 통소를 부니 벽에 붙어 있던 그림 속의 鶴(학)이 黃鶴(황학)으로 변하여 걸어 나와 노인 앞에 이르자 노인은 그 鶴(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노인과 학이 떠난 뒤에 주인 辛氏(신씨)는 그 술집 자리에 큰 누각을 짓고 黃鶴樓(황학루)라 이름을 붙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을 중국에서는 三國時代(삼국시대) 蜀漢(촉한)의 費褘(비위)가 神仙(신선)되어 간 이야기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인할 길은 없다.

작자 崔顥(최호)은 唐(당)나라 卞州(변주) 사람이다. 玄宗(현종) 開元年間(개원년간)(713-741)에 進士(진사)에 급제하여 文名(문명)은 있었으나 행의가 좋지 않아 도박과 술을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관직도 司動員外郞(사동원외랑)에 그쳤다. 그는 많은 詩(시)를 지었으나 작품의 질이 썩 좋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 黃鶴樓(황학루)의 시는 李白(이백)이 격찬하였고 唐人(당인)의 七言律詩(칠언율시) 중 제1이란 평을 받고 있다.
다음에 먼저 崔顥(최호)의 詩(시) 黃鶴樓(황학루)를 소개하고, 뒤에 李白(이백)의 詩(시) 登金陵鳳凰臺(등김릉봉황대)를 제시하여 吟味(음미)하기로 한다.


<黃鶴樓> 崔顥
昔人已乘黃鶴去 옛날의 신선이 황학을 타고 이미 떠났으니
此地空餘黃鶴樓 이 땅에는 허무하게 황학루만 남아 있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은 한번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흰 구름만 천년 동안 속절없이 멀리 떠있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강물 한양의 나무까지 뚜렷이 이어졌고
芳草      鸚鵡洲 향기로운 풀 앵무주에 무성하게 우거져 있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물어가니 고향집은 어느 곳에 있을까
煙波江上使人愁 안개 낀 강가에 있는 사람 향수에 젖어있네
<登金陵鳳凰臺(李白)>
鳳凰臺上鳳凰遊 봉황대 위에서 봉황새가 놀더니
鳳去臺空江自流 봉황 날아간 빈 누대 아래 강물 흐르네
吳宮花草埋幽徑 오나라 궁성 터에는 화초가 길을 덮었고
晉代衣冠成古邱 진나라 벼슬아치들 옛 무덤을 이루었네
三山半落靑天外 세 산은 푸른 하늘에 우뚝 솟아 있고
二水中分白鷺洲 두 강물 백로주에서 두 갈래로 흐르네
總爲浮雲能蔽日 모두가 뜬 구름이 되어 해를 가리니
長安不見使人愁 장안이 보이지 않아 나그네 시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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